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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책무구조도 '만능키' 아니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도 내부통제 부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책무구조도' 제도가 올해부터 본격 시행됐다. 겉으로 보면 금융사 내부통제를 확 바꿀 만능키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다. 제도가 있어도 사고는 계속되고, 책임구조도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는 금융당국의 엄포는 종종 공허해진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대출심사 부실과 횡령 등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감사원은 산업은행의 정책자금 운용 실태에 대한 감사에서 20건에 달하는 위법 및 부당 사례를 적발했다.
 
특히 산은 청주지점장은 대출 모집인을 통한 알선을 금지한 내규를 무시하고 286억원을 부실 기업에 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브로커는 1억원 넘는 수수료를 챙겼고, 4개 기업은 부실화되면서 152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산은 사례는 전형적인 내부통제 실패다. 매출액을 부풀리고, 실무자를 압박해 허위 서류를 작성하게 한 정황은 조직 내부에 묵인과 침묵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사원은 해당 지점장의 면직과 검찰 수사를 요구했고, 산은에는 내부통제 강화를 권고했다.
 
신한은행에서도 올해 들어 두 번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직원이 기업 고객의 서류를 위조해 17억원대의 허위 대출을 일으켰다. 사고 시점은 2021년 12월부터 2023년 7월까지로 책무고조도 제도가 시행되기 전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9월 책무구조도를 가장 먼저 제출한 금융사지만, 사고 발생 시점상 이번 사고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업은행의 경우는 더 애매하다. 239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있었고, 사고 발생 시점이 2022년 6월부터 2023년 11월까지로 책무구조도 시행과 일부 겹친다. 그러나 기업은행은 당국이 운영한 책무구조도 시범 운영에 참여한 금융사로, 일부 인센티브를 적용받아 책임을 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사고가 났는데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급 적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무구조도는 2024년 1월2일 이후 사고부터 적용된다. 그 이전 사고에 대해선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법적으로 묻기 어렵다. 금융감독원도 이를 명확히 하며, 시범 운영 참여 은행에는 제재 감경 또는 면제를 약속했다. 제도를 조기에 안착시키기 위한 당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가 된 셈이다.
 
물론 제도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된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임원 개인의 책무를 문서화해 사고 시 책임 회피를 막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실제 작동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책임을 묻기보다는 '예외'가 더 많고, 금융사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책무구조도는 분명 진일보한 제도다. 하지만 만능키는 아니다. 최근 사례에서 보듯 제도만으로는 금융사고를 막지 못한다. 내부통제가 실패하고, 사고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조직 문화에 있다. '끼리끼리 문화', '온정주의', '성과 중심 외형 확장주의'가 여전한 한 책무구조도라는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답은 조직 문화다. 금융사 내부에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잘못된 관행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투명성과 윤리 의식을 조직의 핵심 가치로 삼고, 이를 뒷받침할 인사·보상·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책무구조도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종용 금융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