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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반도체 성과급 논쟁을 보는 다른 시선
사상 최대의 이익이 사상 최대의 다툼을 불렀다. 첫 번째 다툼은 회사 담장 안에서 벌어졌다. 삼성전자 노사는 총파업 돌입을 앞두고,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의 12%를 재원으로 하는 성과급을 세후 전액 자사주로 10년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가전·모바일(DX) 부문 노조가 가처분을 내며 담장 안의 다툼은 이어졌고, 주주단체는 위장된 위법 배당이라며 소송을 예고했다. 두 번째 다툼은 담장과 담장 사이에서 불거졌다. 지난해 봄 SK하이닉스가 경쟁사 장비를 들이며 공급선 이원화에 나서자, 현장에 상주하며 HBM(고대역폭 메모리) 핵심 장비를 관리하던 한미반도체가 엔지니어를 철수시키고 8년 동결해 온 장비 가격의 인상까지 통보한 것이다. 세 번째 다툼은 담장의 안팎이 갈라지는 자리에서 올라왔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물류를 맡아 온 피앤에스로지스의 노동자들이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날마다 담장을 드나들며 일하지만 소속은 담장 밖인 이들의 항변은, 원청 직원은 수억 원대 성과급을 받는데 같은 현장의 하청 노동자에게는 수백만 원의 상생장려금뿐이라는 것이다.
 
언론은 이 세 다툼을 각기 다른 지면의 별개 기사로 다룬다. 그러나 셋은 같은 질문을 놓고 싸우고 있다. 이 거대한 이익의 몫을 누가, 어느 테이블에서 정하는가. 가치 창출은 담장을 넘나드는 협업의 산물인데, 가치 분배를 결정하는 테이블은 담장 안에만 차려진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이는 기업의 본질을 직원·고객·공급자·투자자와 맺는 관계들을 독특하게 엮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협력체로 규정하며, 기업 이익의 원천을 둘로 가른다. 하나는 독자적 역량으로, 그가 ‘아키텍처’라 부르는, 신뢰와 장기적 기대 위에서 작동하는 협력의 구조다. 다른 하나는 역량과 무관한 ‘자리’다. 과점, 면허, 매몰비용이 만드는 우위로, 누가 그 자리에 앉았어도 같은 이익을 누렸으리라는 것이 판별 기준이다. 둘은 분배에서 정반대로 움직인다. 아키텍처의 수익은 서로 나눠야만 지속된다. 동료에게 노하우를 가르쳐 주고 계약서에 없는 헌신을 하는 행동은 과실이 공유된다는 믿음에서만 나오고, 그 믿음이 깨지면 가치의 원천 자체가 증발한다. 반면 자리의 수익, 곧 지대는 톨게이트의 통행료처럼 누가 가져가도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빼앗겨도 원천이 마르지 않으니, 모두가 더 큰 몫을 노리고 달려들 뿐이다.
 
이 렌즈로 두 회사의 이익을 보면, 성과급의 정당성은 두 성분으로 갈라진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 엔지니어를 대거 영입하고도 격차를 좁히지 못했고, 최고 인력을 보유한 삼성조차 경쟁사보다 19개월 늦게야 엔비디아 인증을 통과했다. HBM의 경쟁우위는 사람을 옮겨도 따라 옮겨지지 않는, 설계·공정·패키징·인증이 맞물리는 조직적 구성, 곧 아키텍처에 있다. 이 성분의 과실을 직원과 나누는 것은 노조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역량 존속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익의 나머지 성분은 사정이 다르다. 2023년 SK하이닉스는 7조 7천억 원, 삼성 반도체 부문은 14조 9천억 원의 적자를 냈지만, 2025년에는 각각 47조 원과 25조 원 안팎을 벌었다. 사람도 기술도 2년 만에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으니, 격변한 것은 조직이 아니라 시황이다. 이익의 상당 부분은 AI 슈퍼사이클이라는 밀물과 생존자 셋만 남은 과점이 만든 ‘자리의 지대’이고, 다툼은 정확히 그 위에서 벌어졌다. 기여를 따질 수 없는 횡재일수록, 노동도 자본도 저마다 손을 뻗을 명분을 갖는다.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도 주주 소송과 노노 갈등이 남은 이유다.
 
시야를 담장 밖, 가치사슬 전체로 넓히면 다투고 있는 이익이 다르게 보인다. 칩 하나에 네덜란드의 광학, 일본의 화학, 대만의 인쇄술, 한국의 적층 기술이 겹겹이 쌓이고, 하이닉스의 HBM 곁에는 한미반도체의 본더가, 물류 동선 위에는 하청 노동자들이 있다. 마디마다 독과점 기업이 버틴 이 ‘병목들의 사슬’에서 몫을 정해 온 것은 기여의 크기가 아니라 희소성과 대체불가능성이었다. 게다가 반세기 동안 같은 용량의 메모리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떨어지며 가치의 대부분은 전방 산업(IT·모바일·빅테크 등)과 소비자에게 흘러갔다. 다투는 성과급 풀은 그러고도 남은 좁은 포획분이다. 담장 안의 누구도 이 이익을 온전히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단체교섭과 주주총회 등 가치 분배를 결정하는 테이블은 모두 담장 안에 차려져 있지만, 가치를 창출하는 협업은 이렇게 담장을 뛰어넘어 작동한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케이가 즐겨 드는 사례인 영국 막스앤스펜서는 공식 계약서 없이 수십 년간 같은 공급사들과 거래했고, 공급사들은 생산량 대부분을 한 고객에 걸고 지식을 공유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관계가 지속되고 과실이 공유된다는 신뢰였다. 거꾸로 관계를 그때그때 값을 다투는 일회성 거래로 바꾸면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응수한다. 지난해 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가 정확히 그랬다. 한 고객만 바라보며 설비와 인력을 묶어 둔 장비사에게 이원화는 해지 통보처럼 받아들여졌고, 장비사는 가격 인상과 인력 철수라는 일회성 거래의 언어로 맞받았다. 담장 안이든 밖이든 작동 원리는 같다. 나눔이 멈추면 협력이 멈춘다.
 
그렇다면 원하청 성과 공유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하이닉스가 협력사에 지급해 온 상생장려금은 사측도 이익을 나눌 필요를 인정함을 뜻한다. 다툼의 본질은 금액이 아니라, 그 돈이 담장 너머로 건네지는 시혜인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정하는 몫인지에 있다. 시혜는 주는 쪽의 사정에 따라 줄고 늘지만, 교섭되고 계약된 몫은 한 고객만 바라보는 투자를 정당화하고, 하청 노동자들에게서 계약서에 없는 헌신을 이끌어낸다. 3월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실질적 지배를 받는 하청에 교섭의 문을 열었지만, 법은 테이블의 존재를 강제할 뿐 그 위에 무엇을 올릴지는 여전히 설계의 영역이다.
 
원하청은 물론 노사와 부문, 주주까지 담장 안팎의 모든 분배에 적용될 설계의 원칙은 셋이다. 첫째, 누구와, 어떤 잣대로 나눌 것인가. 답은 법인의 명부가 아니라 협업의 명부에 있다. 가치를 함께 만든 이들이 곧 분배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분배 몫은 각자의 기여와 감수한 위험을 따라가야 한다. 담장 밖이라는 이유로 기여자를 배제하는 것도, 담장 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몫을 요구하는 것도, ‘원청과 동일한 비율’식의 기계적 복제도, 모두 기여를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은 오류다. 기여와 위험이라는 잣대는 잴 수 있어야 작동한다. 수율·인증·출하처럼 현장이 이미 공유하는 ‘객관적 스코어보드’를 분배의 기준으로 삼고, 그 산식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 무엇을 나눌 것인가. 한 번 건네고 마는 현금보다 다음 창출에 잇닿은 약속이 낫다. 직원에게 지급되는 자사주, 협력사와 미리 맺는 성과공유 계약, 불황에도 지켜지는 물량 하한, 노란봉투법이 새로 차린 테이블에 올릴 원청 이익 연동 지급까지, 모두 오늘의 잉여가 아니라 내일의 성과에 대한 지분을 나누는 장치들이다. 셋째, 역량이 아니라 자리가 만든 횡재의 몫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시간의 설계다. 슘페터가 가르쳐 주었듯 혁신의 지대는 본질상 한시적이다. 모방자들은 이미 출발했고 밀물은 반드시 빠진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10년간 묶은 약정은, 횡재를 그때그때의 힘겨루기 대신 미리 정한 규칙에 맡겼다는 점에서 변호할 수 있다. 다만 호황의 산식이 불황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적립과 평활 같은 완충 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이 거대한 실험이 다음 하강기를 견딜 것이다.
 
분배는 가치 창출이 끝난 뒤 시작되는 힘겨루기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가치 창출을 가능케 하느냐를 가르는 설계의 문제가 돼야 한다. 담장을 허물 수는 없지만, 문은 낼 수 있다. 이 다툼들이 남긴 질문은 결국 가치를 함께 만든 이들이 들어와 마주 앉을 문의 설계로 수렴한다. 법이 반쯤 낸 문은 어떻게 마저 열고, 아직 문이 없는 담장에는 어디에 새로 낼 것인가?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