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책무구조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금융권의 움직임은 지지부진합니다. 지난 상반기 금융사들이 경쟁적으로 조기 도입을 약속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고 발생 시 임원의 책임 구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인데 연말 은행장 임기 만료 등 인사 이동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조기 도입시 제공하는 당국 인센티브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책무구조도 시행 20일째 잠잠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사들은 지난해 말 책무구조도 도입 등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확정됐을 당시만 해도, 앞다퉈 책무구조도 '첫 번째 도입'에 의욕을 보였지만 막상 법 시행 이후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주요 금융업권 중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내년 1월까지 책무구조도를 당국에 제출해야 합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당국에 제출하는 시점부터 도입 및 시행이 본격화됩니다. 책무구조도 제출 이후에는 금융사고가 불거질 시 즉각 책무구조도에 따라 임원진 대상의 직접적 징계가 가능해집니다.
내부통제 이슈로 금융권 신뢰가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책무구조도 '첫 번째 도입'은 신뢰도 제고 등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은행권 안팎에서는 통상 연말에 이뤄지는 조직 개편과 대규모 인사를 이유로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개별 임원의 내부통제 책무가 무엇인지 일일이 규정하는데,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으로 특정 분야의 내부통제를 책임지는 임직원이 바뀌거나, 임직원의 직책이 변경되면 책무구조도를 다시 작성해야 합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시중은행을 비롯해 농협·수협은행, 광주은행·전북은행 등의 은행장들이 연말 대거 임기가 종료됩니다. 지난해 말 당국이 마련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르면 임기만료 3개월전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해야하기 때문에 이르면 8월 중부터는 은행장 인선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제재 경감' 당근책으론 부족
금융지주사별로는 책임윤리 및 내부통제 강화 등 다양한 관점으로 책무구조도에 담길 사안을 보완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입니다. 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에 따라 책무구조도의 기본 틀을 만들고, 수년간의 금융사고 사례를 시뮬레이션해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또한 금감원에서 지적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부서에서 본부, 그룹으로 올라가는 보고 순서에서 체크리스트를 새롭게 작성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을 위해 오는 10월 말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는 금융사에겐 시범 운영기간(올해 11월~내년 1월 초)내 금융사고 발생 시, 소속 임직원의 법령 위반 등을 자체 적발·시정한 경우 제재를 감경 또는 면제해주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인센티브입니다.
다만 시중은행 관계자는 "책무구조도 도입 시 본인의 관리의무 조치가 어느 범위인지에 대해 전 임원을 상대로 사전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진행해야 한다"며 "책무구조도 작성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되, 연말 은행장 인선과 조직개편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당국에서도 모든 금융지주와 은행이 시범사업에 참여할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습니다. 조기 제출 기한인 10월 말과 본격적으로 제도가 운영되기 직전인 12월 말에 책무구조도 제출이 몰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앞으로 금융사의 조직 개편이나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매번 책무구조도 재작성과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며 "시스템 개선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도기적 반응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브리핑실에서 김병칠 금융감독원 전략감독 부문 부원장보가 개정 지배구조법 시행 관련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계획 및 제재 운영지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